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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닿지 않은 그대
이윤하의 생일날, 5살인 아들 군이는 손수 접은 종이 말을 전해 주기 위해 별원의 개구멍에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 군이는 사람들 앞에서 이윤하에게 달려들어 고개를 들고 외쳤다. "아버지, 제가 생신 선물을 가져왔어요." 그러나 순식간에 온 집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큰형님은 달려들어 군이의 뺨을 때리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천한 것! 네 어미가 내 남자를 빼앗더니, 이제 또 네가 와서 내 남자를 빼앗으려 하느냐? 너희 모자는 왜 함께 죽지 못했느냐?" 4년 전 후작 댁의 장남이 싸움터에서 목숨을 잃은 뒤, 그의 부인은 충격으로 정신을 놓았다. 그 후 큰형님은 이윤하를 아주버님으로 착각했고, 나를 아주버님을 유혹한 요사스러운 첩으로 여겼다. 큰형님의 평안을 지키기 위해 이윤하는 나와 군이를 별원에 가두었고, 군이의 생일에도 한 번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달려갔을 때, 사당 밖에는 찢어진 종이 말과 곳곳에 번진 핏자국만 남아 있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핏자국과 끌려간 흔적을 따라 연못가까지 쫓아갔다. 달빛 아래, 군이의 작은 몸은 무자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무자위가 돌아갈 때, 그 아래 흐르는 물은 이미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챕터 (1)
第1章
이윤하의 생일날, 5살인 아들 군이는 손수 접은 종이 말을 전해 주기 위해 별원의 개구멍에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 군이는 사람들 앞에서 이윤하에게 달려들어 고개를 들고 외쳤다.
"아버지, 제가 생신 선물을 가져왔어요."
그러나 순식간에 온 집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큰형님은 달려들어 군이의 뺨을 때리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천한 것! 네 어미가 내 남자를 빼앗더니, 이제 또 네가 와서 내 남자를 빼앗으려 하느냐? 너희 모자는 왜 함께 죽지 못했느냐?"
4년 전 후작 댁의 장남이 싸움터에서 목숨을 잃은 뒤, 그의 부인은 충격으로 정신을 놓았다.
그 후 큰형님은 이윤하를 아주버님으로 착각했고, 나를 아주버님을 유혹한 요사스러운 첩으로 여겼다.
큰형님의 평안을 지키기 위해 이윤하는 나와 군이를 별원에 가두었고, 군이의 생일에도 한 번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달려갔을 때, 사당 밖에는 찢어진 종이 말과 곳곳에 번진 핏자국만 남아 있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핏자국과 끌려간 흔적을 따라 연못가까지 쫓아갔다.
달빛 아래, 군이의 작은 몸은 무자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무자위가 돌아갈 때, 그 아래 흐르는 물은 이미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제1화
“군아!”
나는 이성을 잃은 듯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물 끊임없이 코와 입으로 밀려들어 왔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무자위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고, 군이의 이마는 나무 축에 부딪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군이의 살을 파고든 밧줄을 풀었다.
"군아, 무서워하지 말거라. 어머니가 왔다. 널 데리고 집에 가겠다..."
하지만 품 안의 아이는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고, 더는 예전처럼 여린 목소리로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는 군이를 품에 안은 채 밖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몇몇 늙은 하녀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후작 나리의 명이십니다. 어린 도련님을 방임해 부인을 놀라게 했으니, 사당에 가서 사흘 동안 무릎 꿇고 속죄해야 합니다. 나리께서 친히 내린 명령 없이는 절대 일어나실 수 없습니다."
나는 거듭 애원했다.
"제발 나를 보내 주시오! 군이가 죽어 가고 있소... 제발 아이를 살려 주시오."
늙은 하녀는 군이를 경멸하듯 훑어보았다.
"양지에 나올 수도 없는 천한 것이 죽어 버리면 부인의 눈에 거슬릴 일도 없겠습니다."
나는 온몸이 굳어 버린 채 목이 찢어질 듯 소리쳤다.
"군이는 이윤하의 적자이오! 후작의 세자이오!"
늙은 하녀는 코웃음을 치더니, 눈빛에 연민을 띠었다.
"적자라고요?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4년 전 부인께서 별원에 들어가시던 날, 후작 나리께서는 이미 종가를 함께 잇기로 하셨고, 안 부인을 평처(平妻)로 맞이하셨습니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지만, 늙은 하녀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안 부인께서는 이미 후작 나리와 연태 도련님을 낳으셨고, 족보에도 올리셨습니다. 명실상부한 세자이십니다."
"하지만 저 아이의 이름은 이미 족보에서 지워졌습니다."
군이를 안은 내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4년 전 이윤하의 형님이 싸움터에서 목숨을 잃은 뒤, 형님의 부인은 충격으로 정신을 놓았다.
그 후 큰형님은 이윤하를 아주버님으로 착각했고, 나를 아주버님을 유혹한 요사스러운 첩으로 여겼다.
그 후로 내가 이윤하에게 다가가기만 하면 안서영은 미친 듯 소리를 질렀다.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벽에 내리쳤으며, 뜨거운 찻물을 내 손등에 끼얹고 금비녀로 내 얼굴을 그었다.
심지어 군이가 2살 때, 그저 한 번 "아버지"라고 불렀기 때문에, 안서영은 완전히 이성을 잃고 바늘로 군이의 입을 찔러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천한 핏줄 주제에 감히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니!"
심지어 우리 모자를 죽이기 위해 문 앞 돌사자에 제 머리를 들이박기까지 해서 이윤하에게 강요했다.
이윤하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내게 애원했다.
"미희야, 형수님은 병이 났다. 우선 군이를 데리고 별원에서 잠시만 지내라. 형수님이 나으면 내가 직접 너희를 데리러 가겠다."
그렇게 참고 견딘 세월이 무려 3년이었다.
군이는 날마다 문턱에 앉아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오늘은 절 보러 오실까요?"
하지만 기다림 끝에 맞이한 것은, 무자위에 거꾸로 매달려 산 채로 이런 지경까지 고통받은 것뿐이었다.
"우미희!"
이윤하는 성큼성큼 다가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누가 네가 나오도록 허락했느냐?"
나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군이를 품에 안고 그를 꿰뚫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안서영을 부인으로 맞이하고 그 여자의 아들을 세자로 삼은 겁니까?"
이윤하의 표정은 잠시 굳었다.
"미희야, 나중에 내가 다 설명할 테니 우선 돌아가거라. 더는 소란 피우지 말거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시녀가 울며 달려왔다.
"후작 나리, 연태 도련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부인께서 또 병이 도져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계십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뭐라고?"
이윤하는 다급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몸을 돌려 떠났다.
나는 찢어지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이윤하!"
그의 발걸음은 잠시 멈췄지만,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서영의 처소로 달려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칼로 도려내진 듯 텅 비어 버린 것 같았다.
늙은 하녀가 다시 다가오려 하자, 나는 은비녀를 뽑아 목에 갖다 댔고, 곧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누구든 감히 날 막는다면 나는 후작 댁 문 앞에서 죽겠소. 온 경성이 똑똑히 보게 하겠소. 안원후(安遠侯)가 어떻게 본처를 죽음으로 몰고, 제 자식까지 죽게 했는지!"
나는 군이를 품에 안고 의원으로 향했다.
늙은 의생은 군이의 맥을 짚었고,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마가 깨질 정도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제발 살려 주시오. 아직 5살밖에 되지 않았소...”
"너무 늦었습니다. 반 시진(時辰)만 일찍 오셨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가 이미 떠났습니다."
제2화
나는 밤새 의원 앞에서 앉아 있었다.
날이 밝아 올 무렵이 되어서야 나는 고개를 숙여 얼굴로 군이의 굳어 버린 작은 얼굴에 살며시 비볐다.
나는 겉옷을 벗어 군이의 몸을 감싸 주었다.
"군아, 무서워하지 마. 내가 너를 집으로 데려가마."
나는 군이를 품에 안고 후작 댁의 측문으로 들어섰고, 그때 몇몇 시녀들이 목소리를 낮춰 나누는 얘기를 들었다.
"어젯밤 연태 도련님 일로 나리께서 매우 놀라셨던데, 어의 3분이 번갈아 곁을 지키셨다더라."
"후작 나리께서 손수 약을 달이시고 밤새 눈도 붙이지 않으셨더라. 애지중지하는 아들이니 어찌 조금인들 고생하게 두셨겠냐?"
내 발걸음이 굳어 버렸고, 마음은 무참히 짓밟힌 듯 산산이 부서졌다.
별원에 들어온 첫해, 군이는 3일 동안 고열은 내리지 않았고 기침할 때마다 손수건에는 온통 피로 물들었다.
열에 정신을 잃은 군이는 내 손을 꼭 붙잡고 울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저를 버린 건가요?"
나는 비를 맞으며 안채 앞에 무릎을 꿇고, 이윤하에게 한 번만이라도 와서 군이를 봐 달라고 애원했다.
돌아온 것은 한마디뿐이었다.
"후작 나리께서는 부인의 마음을 달래고 계시니, 소란 피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밤 군이는 별원에서 목숨을 잃을 뻔할 만큼 심하게 앓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서영의 아이가 그저 쓰러졌을 뿐인데도, 그는 밤새도록 곁을 지켰다.
나는 치미는 눈물을 억누르며 별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군이를 품에 안은 채 성 밖 자은사(慈恩寺)로 향했다.
시어머니께서는 4년 전 장남이 죽은 뒤부터 줄곧 사찰에 머물며 가문을 위해 복을 빌고 계셨다.
온몸이 피로 얼룩진 내가 들어오자, 시어머니는 염주를 굴리던 손을 멈추고 군이의 얼굴에 시선을 두었고,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시어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고 군이를 조심스럽게 부들방석 위에 내려놓은 뒤, 쉰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 두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저를 위해 화리서(和離書)를 써 주시고, 군이의 발인 날 때 천도재를 올려 깨끗하게 떠날 수 있도록 보내 주십시오."
시어머니께서는 몸을 휘청하시며 나를 부축하려 하셨다.
"미희야, 우선 일어나거라...”
나는 세차게 머리를 조아리고 이마를 바닥에 댔다.
"그때 후작 댁이 우리 온 가족을 구해 주셨기에, 저는 은혜를 갚고자 이윤하에게 시집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군이는 죽었고, 그의 마음도 이미 다른 사람에게 가 버렸습니다."
"어머님, 부디 화리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사찰의 종소리가 무겁게 울려 퍼졌다.
시어머니께서는 한참 동안 눈을 감고 계시다가,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 집이 너를 저버렸다. 내가 네 화리서를 직접 써 주마. 군이의 천도재도 내가 직접 지켜 주마."
시어머니께서는 모레 후작 댁으로 돌아와 직접 일을 치러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나는 군이를 안아 들고 시어머니께 마지막으로 큰절을 올린 뒤, 몸을 돌려 후작 댁으로 돌아가 묵은 물건들을 정리하려 했다.
그런데 산기슭에 막 다다르자,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저 여자를 붙잡아라!"
안서영이 사람들을 데리고 갑자기 달려왔고, 하인들이 나를 에워쌌다.
그녀는 나를 가리키며 원한이 서린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우미희, 이 도둑년! 내 서방님을 꼬드긴 것도 모자라 네 그 천한 자식까지 시켜 내 옥팔찌를 훔치냐?"
이윤하가 뒤이어 도착해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미희야, 팔찌를 내놓아라."
나는 군이를 품에 꼭 끌어안고 한 글자씩 힘주어 뱉어냈다.
"제가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서영은 내게 달려들어 거칠게 잡아당겼다.
"어제 저 천한 것이 소란을 피운 뒤로부터 옥팔찌가 감쪽같이 사라졌는데, 네가 훔친 게 아니라면 대체 누가 훔쳤겠냐?"
"너희 모자는 천한 것들이야!"
그녀는 군이의 겉옷을 잡아당겼다.
나는 온몸을 떨며 품에 안은 아이를 필사적으로 감쌌다.
4년 동안 억눌러 온 억울함과 증오가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
나는 안서영을 거칠게 뿌리치며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소리쳤다.
"진짜 도둑은 바로 당신이다! 미쳤다는 걸 빌미로 내 서방님을 빼앗고, 내 아들의 아버지까지 빼앗았잖니..."
"그만해라!"
짝! 뺨 한쪽을 세게 얻어맞은 순간 내 얼굴이 얼얼해졌고, 입안에는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이윤하는 안서영 앞에 막아서서 얼굴을 시퍼렇게 굳혔다.
"네가 한마디라도 더 지껄여서 서영을 자극한다면 널 비구니 암자로 보내겠다. 평생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게 할 테니!"
"어서 팔찌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을 쓰겠다!"
나는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7년 동안 부부로 살아온 세월이 고작 한바탕 웃음거리였다.
나는 군이를 품에 안은 채 뒷걸음질 쳤다.
"좋습니다. 어머님께 가서 제가 훔쳤는지 직접 보시게 합시다."
그런데 막 몸을 돌리는 순간, 번갯불처럼 서늘한 칼끝이 곧장 밀려 들어왔다.
안서영이 품에서 비수를 뽑아 들더니 미친 사람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죽어라! 너도 이 천한 자식도 모조리 죽어라!"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으로 군이를 감쌌고, 순간 칼날이 어깨와 등에 꽂혀서 아픔에 온몸이 떨렸다.
흘러내린 피는 군이의 창백한 작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나는 군이를 필사적으로 끌어안은 채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이윤하가 달려와 뒤에서 안서영을 떼어 놓았다.
"안서영, 그만해라! 정말 사람 목숨까지 잃게 할 셈이냐?"
그 말을 듣고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우리 군이는 이미 목숨을 잃었다.
이윤하는 나를 바라보면서 눈빛에 안타까움이 스쳤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다.
"어제 군이가 날뛰도록 방임하지만 않았더라면, 서영도 자극받지 않았을 것이다. 너희 모자가 지금 그런 꼴을 당한 것도 모두 자업자득이다!"
"어차피 너도 벌받았으니, 옥팔찌를 훔친 일은 더 따지지 않겠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몸을 힘겹게 일으켜 앉았다.
“군이는 이미 죽었..."
그러나 안서영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그의 품으로 쓰러졌다.
"가슴이 너무 아파..."
이윤하는 곧바로 그녀를 안아 들었고, 내 말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 그저 한마디만 남겼다.
"얌전히 있어라. 더는 소란 피우지 말고."
마차는 멀어져 갔다.
나는 군이를 품에 안은 채, 마침내 소리 내어 울었다.
"군아, 어미가 못났다... 살아서는 너를 지켜 주지 못했고, 죽어서도 너를 욕되게 하는구나."
"너를 데리고 떠나마. 이제 다시는 그 남자를 기다리지 않겠다."
제3화
나는 자신의 상처를 싸맨 뒤, 따뜻한 물을 길어 군이의 얼굴에 묻은 피를 하나하나 닦아냈다.
마지막으로 군이가 가장 좋아하던 옷으로 갈아입혀 주었다.
예전의 군이는 늘 이 옷을 입고 내 앞에서 빙글빙글 돌며, 눈을 반짝였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보시면 군이를 칭찬해 주실까요?"
하지만 군이는 이제 그날을 기다릴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가진 돈을 모두 꺼내 관 파는 곳에 가서 금사남목(金絲楠木)으로 만든 작은 관을 주문했다.
그리고 주인장에게 먼저 군이의 시신을 빙관(冰棺)에 안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일이면 군이를 땅에 묻어 줄 것이다.
밤이 되자 이윤하가 다시 찾아왔다.
그는 손에 금창약을 들고 내 곁에 앉았다. 목소리는 드물게 부드러웠다.
"낮에 형수님이 이성을 잃은 것이다. 진심으로 너를 해치려 한 것이 아니다. 병이 아직 낫지 않으니, 따지지 마라."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사랑해 온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더럽게만 느껴졌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때 종가에서 나를 몰아붙였다. 두 집안을 함께 잇지 않으면 형수님을 집에서 내쫓겠다고 했다. 근데 그 지경까지 미쳐 버렸는데, 우리 집을 떠나면 분명 살아갈 수 없었을 거다."
"어릴 적부터 형님이 나를 지켜 주며 키워 주셨다. 나는 형님의 유족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눈가는 뜨겁게 아팠다.
"그럼, 연태는?"
"연태는 군이보다 겨우 1살 어립니다! 당신 형님의 시신이 아직 식기도 전에, 안서영이 당신의 아이를 가진 겁니까?"
이윤하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날 밤 형수님을 보냈는데 다시 돌아와 나를 붙잡고 울면서 나를 형님으로 착각했고, 내가 잠시 이성을 잃어서 그만..."
그는 내 손을 세게 붙잡았다.
"형수님이 정신이 맑을 때 아이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병이 나으면 내가 너와 군이를 다시 데려오고, 우리는 예전처럼 지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허리가 꺾일 듯 웃었지만, 눈물은 한 방울씩 떨어졌다.
이윤하는 난처한 듯 내 시선을 피했다.
그는 마침내 무언가 떠올린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군이는 어디 있느냐? 사과하려고 좋아하던 탕후루를 사 왔다."
가슴이 갑자기 찢어질 듯 아파져 왔다. 나는 손을 들어 그의 곁에 있던 탕후루와 금창약을 문밖으로 내던졌다.
"나가십시오! 군이는 당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평생에 다시는 군이를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윤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고, 눈빛에 분노가 차올랐다.
"우미희, 네가 감히 아이를 가지고 나에게 화풀이하는 것이냐?"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방 안에서 다시 군이를 불렀다.
아무런 대답도 없으니, 그는 화가 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다. 너희 모자가 끝내 사리를 모른다면, 앞으로는 내가 오지 않겠다!"
문이 세차게 닫혔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목이 메어 울음조차 터뜨리지 못했다.
한밤중, 나는 군이의 작은 옷을 품에 안은 채 곤히 잠들었다.
그런데 목이 갑자기 조여 왔다.
이윤하는 내 목을 움켜쥐고, 나를 침상에서 마당까지 끌고 나간 뒤 바닥에 거칠게 내팽개쳤다.
"간도 크구나. 군이를 시켜 서영과 연태의 약에 독을 넣게 한다니!"
나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눈앞이 캄캄해졌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약 찌꺼기 한 봉지가 내 앞에 내던져졌고, 탕약이 얼굴에 튀었다.
"말도 안 됩니다..."
내가 막 입을 열자, 안서영이 울면서 달려와 모든 힘을 다해 내 뺨을 후려쳤다.
“저 여자를 죽이십시오! 오늘은 독을 넣을 수 있으니, 내일은 저와 연태의 목숨까지 빼앗으려 할 겁니다!"
유모가 연태를 안고 들어왔다.
3살 아이는 흐느껴 울면서도 한 글자씩 또렷하게 말했다.
"아버지, 제가 봤어요. 그날 형이 저를 독살하겠대요. 자기가 아버지의 유일한 아들이래요."
나는 저 모자의 얼굴을 꿰뚫듯 노려보았다.
하나는 미쳤고, 하나는 어렸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나와 군이를 어떻게 짓밟아 죽음으로 몰아갈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이윤하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더 할 말이 있느냐?"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고통을 참으며 웃었다.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군이는 더더욱 그럴 리 없습니다!"
"큰형님이 먼저 제 아이의 목숨을 노렸습니다. 제가 정말 연태를 죽였다 한들 어쩌겠습니까? 형수와 시동생이 몰래 맺어 낳은 패륜의 자식이 감히 내 아이에게 목숨값을 요구한단 말입니까?"
마당은 순식간에 침묵에 잠겼다.
연태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아버지! 저는 천한 자식이 아니에요! 연태가 아버지의 유일한 아들 맞죠?"
안서영은 연태를 끌어안고 이윤하를 붙잡은 채 얼굴을 일그러뜨리도록 울부짖었다.
“들었습니까? 저 여자를 죽여야 합니다!”
이윤하의 눈빛은 완전히 차갑게 굳었다.
"우미희, 남자의 침상에 올라간 천한 년이 세상에 드러낼 수도 없는 잡종을 낳아 놓고, 감히 후작 부인과 세자를 욕하느냐?"
그는 한 글자씩 뚜렷하게 뱉어냈다.
"군이를 내놓아라. 그러면 가볍게 처벌하는 것도 생각해 보겠다."
천한 년, 잡종...
그해 내가 난산으로 고통받을 때, 그는 예법도 잊은 채 뛰어들어 나를 부축했고, 눈시울을 붉히며 내 손을 잡았다.
평생 나와 아이를 지켜 주겠다고 했다.
돌이켜 보니 그 말들은 모두 과거 속에서 썩어 버렸다.
나는 아픔을 참으며 몸을 일으켰고, 눈물이 쏟아졌다.
"내놓을 수 없습니다."
이윤하의 미간이 떨렸다.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가 피를 토하듯 처절했다.
"군이는 죽었습니다. 바로 당신의 생일날 때입니다! 그저 당신을 한 번 아버지라 불렀을 뿐인데, 당신들이 연못의 무자위에 거꾸로 매달아 산 채로 괴롭혀 죽였습니다!"
“이제 와서 무슨 시치미를 떼는 겁니까?"
제4화
이윤하는 창백해진 얼굴로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다시 말해라. 군이가 어떻게 됐다는 것이냐?"
내가 막 입을 열려던 순간, 뒤에서 안서영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연태야! 연태가 피를 토했습니다!"
이윤하 손의 힘이 갑자기 풀렸다.
나는 그가 몸을 돌려 안으로 뛰어 들어가, 계속 피를 토하는 연태를 안아 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마저 다급하게 떨렸다.
"어의를 불러라! 당장 어의를 불러라!"
안서영은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고, 눈빛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우미희, 연태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와 그 천한 자식까지 함께 죽여 버리겠다!"
그녀는 사람을 시켜 내 머리채를 붙잡아 나를 앞마당까지 끌고 가게 했다.
자갈에 무릎이 갈려 찢어지고, 끌려간 길마다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1시진 뒤, 이윤하가 방 안에서 나왔고 두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알고 있느냐? 어의가 독이 조금만 더 심했더라면 연태는 목숨을 잃었을 거라고 했다!"
"말해라. 군이는 어디 있느냐?"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윤하는 더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연거푸 끄덕였다.
"좋다. 네가 군이를 감싸겠다면, 네가 대신 벌도 받아라."
하인이 등나무 회초리를 가져왔다. 그 위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빽빽이 감겨 있었다.
안서영은 충혈된 눈으로 회초리를 낚아채더니 그대로 휘둘렀다.
"내가 하겠다."
첫 대는 내 얼굴 위로 떨어졌다.
얼굴 한쪽 살점이 가시에 그대로 찢겨 나갔다. 눈앞이 캄캄해질 만큼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계속해서 매를 휘둘렀다.
"천한 년! 내 서방님을 빼앗고 내 아이까지 해친다니! 왜 아직도 죽지 않는 거냐?"
옷자락은 찢겨 나가고, 살은 터져 벌어졌다.
30대를 맞고 난 뒤,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쉬는 것조차도 떨렸다.
그제야 이윤하는 매를 넘겨받았지만, 오히려 먼저 안서영을 달래며 부드러운 말투로 방에 돌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나를 바라볼 때, 그는 차마 못 보겠다는 표정이었다.
"미희야, 이건 네가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앞으로 다시는 사람을 해치려는 생각을 품지 마라."
나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우리 화리합시다."
그 말을 듣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때 안서영의 기쁨에 찬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다.
"연태가 깨어났습니다!"
이윤하는 곧바로 몸을 돌리며 한마디만 남겼다.
"보아하니 매를 맞고 정신이 나간 모양이구나."
문 앞까지 간 그는 다시 차갑게 말했다.
"네가 군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니, 내일 군이를 서영의 양자로 들여서 직접 가르치게 할 것이다. 네 손에 맡겨서 더 나빠지는 일은 막아야겠다."
나는 피 웅덩이 속에 엎드린 채,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윤하, 군이에게는 내일이 없다.
다음 날, 나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겨우 이끌고 상복을 입었다.
관을 파는 사람들이 작은 금사남목 관을 앞마당으로 들여왔다.
나는 위패를 손에 들고 말했다.
"내 아들을 보내 주어라."
관이 막 움직이려던 순간, 이윤하가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왔다.
온 마당이 흰색으로 뒤덮인 모습을 보고, 또 작은 관을 보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또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오늘 군이를 서영의 양자로 들일 것이라고 이런 불길한 것들을 일부러 벌이는 것이냐?"
나는 무감각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군이의 장례 절차입니다."
이윤하는 순간 멈칫하더니, 화가 너무 나서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그깟 오기 때문에 친아들까지 죽었다고 저주하는 것이냐?"
안서영도 뒤따라 나왔고, 이 광경을 보자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달려와 내 손에 있던 위패를 낚아채 바닥에 세게 내리쳤다.
나무 위패가 산산이 부서졌다.
군이의 이름도 함께 부서졌다.
안서영의 칼날 같은 독한 말이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우미희! 연태가 나았다고 이런 불길한 것들로 해를 끼치려는 것이냐?"
내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나는 그녀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려 했다.
"안서영! 네 목숨을 내놓아라!"
이윤하는 그녀를 품 안으로 감쌌고, 내 손바닥이 그대로 그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그만할 수 없느냐?”
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 쉰 목소리로 외쳤다.
"군이의 위패를 먼저 부순 건 저 여자입니다!"
이윤하는 바닥에 흩어진 나무 조각들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가짜 위패 하나 때문에 이런 난리를 치는 것이냐?"
그는 하인들을 바라보며 매서운 목소리로 명했다.
"저 불길한 것들은 전부 치우고 관은 부숴서 태워 버려라."
관 파는 주인장은 놀라 무릎을 꿇었다.
"후작 나리, 도련님께서 정말 관 안에 계십니다!"
이윤하의 눈빛은 더 차가워졌다.
"우미희가 너에게 얼마를 주었길래 감히 둘이서 짜고 날 속이려는 것이냐?"
나는 기어가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절박하게 애원했다.
"부탁드립니다. 한 번만 봐 주세요... 안에 누워 있는 아이는 군이입니다. 당신의 친아들이란 말입니다!"
"꺼져라!"
하지만 그는 발로 내 가슴을 걷어찼다.
나는 나뒹굴었고, 고통에 몸을 웅크렸다.
"부숴라!"
하인이 손을 들어 관 뚜껑을 열려고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앞으로 기어갔다. 손톱은 돌 틈에 박혀 피투성이가 되었다.
"건드리지 마! 군이를 건드리지 말거라!"
안서영은 내 머리채를 잡아 내 얼굴을 바닥에 짓눌렀다.
"봤느냐? 나와 다투려 들더니, 이제는 아들의 시신조차 지키지 못하는구나!"
나는 움직일 수 없어서 그저 그 손이 관 뚜껑으로 향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안 된다!”
그 순간, 위엄 어린 노성이 울려 퍼졌다.
"멈춰라!"
마차 한 대가 문 앞에서 멈추고, 시어머니께서 부축받으며 내리셨다.
이윤하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머니?”
그가 막 다가가려던 순간, 시어머니께서는 손을 들어 그대로 그의 뺨을 때리셨다.
"이 짐승 같은 놈! 네가 저 독한 여인을 방임해 내 손자를 죽게 만들더니, 이제는 군이를 안장하는 것조차 막느냐? 네가 아비라 할 자격이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