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비밀 결혼은 여기까지

GoodNovel 완결

6년간 비밀 결혼 생활을 이어오던 중, 남편의 첫사랑이 돌아왔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떠나 첫사랑에게 이 자리를 돌려주기로 결심했다.

챕터 (1)

第1章

6년간 비밀 결혼 생활을 이어오던 중, 남편의 첫사랑이 돌아왔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떠나 첫사랑에게 이 자리를 돌려주기로 결심했다. 제1화 결혼한 지 6년, 하경훈이 오늘 밤 처음으로 딸을 품에 안고 높이 들어 올렸다. 5살 마음은 활짝 웃으며 심희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엄마, 아저씨가 나 하늘까지 날려 줬어!” 심희연은 가슴이 아팠지만, 애써 웃으며 두 부녀를 바라보았다. 하경훈은 오늘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하경훈은 마음도, 심희연도 사랑하지 않았다. 지금 이 남자가 기뻐하는 이유는, 자신이 깊이 사랑했던 소윤지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6년 전, 하경훈은 소윤지와 뜨겁게 연애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윤지가 갑자기 떠났고, 그녀를 쫓아가던 하경훈은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심희연은 하경훈의 전담 비서였다. 심희연은 밤낮으로 하경훈의 곁을 지키며 그의 까칠한 성격을 견뎌내면서 격려했고 재활 치료를 함께했다. 하경훈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 날, 그는 기쁨에 겨워 술을 마셨다. 만취한 채 심희연을 소윤지로 착각해서 밤새도록 그녀를 안았다. 그날 밤 관계로 심희연이 임신하자 하경훈은 그녀와 결혼하기로 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하경훈은 심희연을 사랑하지 않았을뿐더러, 책임감 때문에 결혼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하경훈이 심희연과 결혼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소윤지가 해외에서 다른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봤기 때문이었다. 결혼 후에도 하경훈은 마치 투명 인간처럼 심희연과 딸의 삶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마음이 태어난 날, 하경훈은 일부러 타지로 출장을 떠났다. 마음이 옹알이를 시작했을 때도 하경훈은 얼굴이 굳어진 채, 아이가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마음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중심을 잃었을 때, 그저 아빠라고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하경훈은 차갑게 외면했다. 넘어진 아이의 머리가 터져도 그대로 두었다. ... 하지만 지금 눈앞의 만취한 하경훈은 딸을 향해 가득한 부성애를 보여주고 있었다. 딸을 안아 올렸다가 소파에 내려놓은 하경훈이 눈을 반짝이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좋은 아빠가 되어줄게.” “응! 마음이는 아빠 믿어!” 하경훈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돌아서며 한 이름을 내뱉었다. “준이야.” 하경훈은 준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주겠다는 뜻이었다. 심희연의 마음이 싸늘해졌다. 준이, 그건 소윤지의 아들 이름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 말의 앞부분만 듣고 기뻐서 심희연에게 달려왔다. “아빠가 나 좋아하는 거 맞지?” “이제 나도 아빠라고 불러도 되는 거지?” “아빠가 나 안아줬어.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되어준다고 했어.” 아이의 눈빛은 간절함으로 가득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아빠 품에 안겨서 마음껏 응석도 부리고, 아빠라고 부르며 사랑받고 싶었다. 심희연은 가슴이 미어졌다. 심희연은 아이의 희망을 깨고 싶지 않아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딸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이 잠깐의 행복이 다른 엄마와 그 아들 덕분이라는 사실을. “마음아, 엄마랑 같이 여기서 떠날래?” 심희연은 눈물을 꾹 참고 물었다. 마음은 잠시 멈칫했다. “우리 왜 떠나?” 마음의 미소가 얼굴에 멈춘 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물이 글썽였다. “우리 아빠랑 가족이잖아. 나 아빠랑 같이 있고 싶어.” 손을 들어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던 심희연이 목이 메어 말했다. “아저씨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돌아왔어. 이제 우리는 떠나야 해.” “하지만... 아빠는 나 좋아하잖아.” 마음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아마 아이도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하경훈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 내 생일까지만 기다려줘. 아빠한테 몇 번 더 기회를 줘보자.” “어쩌면 아빠가 정말 우리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아빠가 우리랑 같이 있어주면 우리 안 떠나도 되지?” 심희연은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몇 번 더 기회를 줄지는 네가 정해.” 그럼 마지막으로 몇 번 기회를 더 주자. 만약 하경훈이 또 다시 실망시킨다면, 두 사람은 영원히 그의 곁을 떠날 것이다. “응, 고마워.” “이제 자야지.” 마음이를 재운 뒤, 심희연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하경훈과의 결혼 생활은 이름뿐이었고, 겉으로 유지할 관계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하경훈이 잠에서 깨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아침을 먹던 마음은 하경훈을 보자마자 기뻐하며 빵을 내려놓고 달려갔다. “아빠, 일어났어?” 하경훈은 순간 얼굴이 굳어지더니 차갑게 물었다. “방금 뭐라고 불렀어?” 마음이는 벌렸던 두 팔이 허공에서 멈췄고, 하경훈의 표정에 겁을 먹었다. “아저씨...” 마음은 바로 호칭을 고치고 서운한 듯 손을 내렸다. “미안해요.” 심희연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쓰라림을 힘껏 눌렀다. 그리고 다가가서 아이를 안아 올렸다. “밥 먹자. 학교 늦겠어.” 심희연은 알고 있었다. 하경훈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어젯밤의 일은 소윤지가 돌아온 게 기뻐하다 술에 취해서 저지른 실수일 뿐이었다. 하경훈의 표정은 조금 누그러졌다. 식탁으로 가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인사도 없이 나가버렸다.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 마음은 여느 때처럼 하경훈의 뒷모습에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학교 가는 길, 마음이는 계속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아이가 고개를 들어 심희연을 올려다보았다. “엄마, 이번이 기회 한 번 맞지? 이제 아저씨한테 세 번만 더 기회를 주자!” 마음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심희연은 마음이 아팠다. “그래,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하자.” 제2화 딸이 유치원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 뒤, 심희연은 발걸음을 돌려 법률사무소로 향했다. 심희연은 하경훈이 작성한 이혼 합의서를 꺼내 들고, 이혼 합의서가 유효한지 물어보았다. 하경훈이 심희연과 결혼할 당시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하경훈은 언제든 이혼을 요구할 수 있고, 심희연은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이 합의서는 결혼 전에 미리 준비된 것으로, 날짜는 비어 있고 하경훈의 서명만 있었다. 합의서가 유효하다는 확인을 받자, 심희연은 자신의 이름을 적고 변호사에게 이혼 절차를 대신 진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죄송하지만, 처리가 끝나면 이혼 증명서를 이 주소로 보내주세요.” 심희연은 집 주소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끝이 찡해졌지만, 심희연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삼켰다. 심희연은 하경훈을 사랑했다. 결혼 후에도 심희연은 노력했고 꿈도 꾸었다. 하지만 하경훈이 거듭 외면하고 무시할 때마다 뜨거웠던 심희연의 마음도 점점 식어갔다. 소윤지가 돌아왔으니, 이제 심희연이 떠나야 할 때였다. 하필이면 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심희연은 백화점 1층 로비에서 하경훈과 소윤지를 마주쳤다. 소윤지는 아름다웠다. 소윤지의 몸에서는 도발적이면서도 야성적인 매력이 풍겼다. 소윤지는 하경훈의 팔짱을 끼고 있었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하경훈은 한 팔로 소윤지의 아들을 안고 있었고, 아이를 바라보는 눈에는 다정함과 애정이 가득했다. 심희연은 숨이 멎는 듯했다. 언젠가 심희연도 하경훈과 함께 마음이를 데리고 쇼핑하는 모습을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심희연은 세 사람을 바라보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힘겹게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온 심희연은 이력서를 준비해서, 자신의 작품을 첨부해 A국에 있는 몇몇 마음에 드는 회사로 보냈다. 이어서 사직서를 출력해서 바로 회사로 가져갔다. 하경훈과 결혼한 후, 심희연을 자기 곁에서 내보냈다. 지금 심희연은 비서팀의 평범한 직원일 뿐이었다. 퇴사 절차는 간단했다. 맡은 업무만 인계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다. 인사과에서 사무실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복도에서 발소리와 아부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희연이 고개를 들자, 몇몇 임원들이 하경훈과 소윤지를 에워싸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소윤지는 옷을 갈아입은 뒤였다. 아까와 달리 도발적인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단정하고 세련된 오피스룩으로 나타난 소윤지는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경훈은 한쪽 팔을 살짝 들어 소윤지의 허리를 감쌌고, 눈빛은 그녀에게서 한시도 떨어질 줄 몰랐다. 심희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심희연이 하경훈을 바라보았지만,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심희연은 고개를 숙였다. 이내 사람들이 심희연 앞까지 다가왔다. “심 비서, 이쪽은 소윤지 씨입니다.” “하 대표님의 여자친구인데, 앞으로 심 비서가 맡고 있던 업무를 소윤지 씨가 이어받을 겁니다.” “심 비서는 영업부로 이동해서 최대한 빨리 업무를 인계하도록 하세요.” 하 대표의 여자친구? 하경훈은 부인하지 않았다. 심희연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하경훈은 정말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소윤지가 돌아오자마자 심희연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으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딸이 어떤 기분을 느낄지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심희연은 다시 한번 하경훈을 바라봤다. “경...” 입을 열기도 전에 하경훈이 차가운 눈빛으로 심희연을 제지했다. “희연 씨, 업무 배치에 불만이 있으면 직속 상사에게 말하세요.” 심희연이 두 사람의 관계를 밝히는 것을 원치 않았던 하경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소윤지 씨가 당신보다 이 자리에 더 어울립니다.” 하경훈이 덧붙였다. 심희연은 마음속으로 깨달았다. 하경훈이 말하는 것은 단지 업무 자리만이 아니라는 것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미세한 통증이 퍼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심희연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하경훈은 심희연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심희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소윤지와 악수를 나눴다. 하경훈은 만족한 듯 다시 소윤지를 바라보았다. 하경훈의 눈빛에 담긴 차가움은 순식간에 부드러움으로 바뀌었다. 심희연과 마음은 이런 눈빛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사랑과 비사랑의 차이는 이렇게나 분명했다. 다행히도 심희연은 이제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저녁에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회식이 잡혔다. 소윤지의 입사 환영회였는데, 심희연은 이미 사직서를 낸 상태라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소윤지가 심희연을 붙잡았다. “혹시 제가 당신 일자리를 빼앗았다고 화가 나서, 제 환영회에 안 오시는 건 아니죠? 저는 정말 아무것도 빼앗을 생각 없었어요. 다 경훈 씨가 정한 일이에요.” “저 오늘 막 입사했는데, 희연 씨랑 이야기를 좀 많이 나누고 싶어요. 제가 아는 직원분들이 별로 없는데, 저하고 같이 가주실 수 있나요?” 심희연은 소윤지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자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해하셨어요. 딸을 데리러 가야 해서요. 미안해요.” “남편분은요? 남편분께 아이 픽업을 부탁하면 되잖아요!” 남편? “저 남편 없어요.” 심희연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마음속은 한없이 쓸쓸했다. 하경훈은 한 번도 심희연을 아내라고 인정한 적 없었다. 두 사람의 삶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 남편이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죄송해요, 몰랐어요.” 소윤지가 사과하면서도 끝까지 심희연을 환영회에 데려가려고 했다. “그럼 딸도 같이 데려오세요. 제 아들도 올 거라서, 또래 친구끼리 같이 놀면 좋을 거예요.” “아니요, 제 딸은 이런 자리를 싫어해서요.” 그때 작은 몸집의 아이가 심희연에게 달려왔다. “엄마, 오늘 아저씨가 유치원에 나 데리러 왔었어!” 마음이 심희연의 품에 안기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나 여기까지 데려다줬어!” 심희연은 깜짝 놀랐다. 하경훈은 마음이 어느 유치원에 다니는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아이를 데리러 갔다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하경훈이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하경훈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윤지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심희연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경훈아, 심희연 씨 딸도 알고 있었어?” 소윤지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준이 데리러 갔다가 마주쳐서 같이 데려왔어. 심 비서 딸인데, 회사에 몇 번 온 적이 있거든.” 하경훈은 소윤지가 오해할까 봐 급히 설명했다. 하경훈이 마음이와 심희연을 언급하는 목소리에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 마치 완전히 남인 사람들처럼, 두 사람과 조금이라도 엮이는 것조차 피하려는 듯한 태도였다. 마음이 입을 열면서 하경훈을 부르려 했다. 심희연은 딸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마음은 서운한 듯 고개를 숙였다. “아, 그렇구나. 그런데 이 아이는 아빠가 없다고 하네. 희연 씨를 영업부로 보내지 않는 게 좋겠어. 혼자 아이 키우는 게 쉽지 않잖아.” 하경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심희연을 슬쩍 흘겨보더니 말했다. “그래, 네가 결정해.” 소윤지는 기뻐하며 하경훈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주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서로에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마음은 심희연의 옷자락을 붙잡고서 엄마의 다리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 경훈 아빠!” 준이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눈 맞춤을 끊었다. 아이는 뛰어오더니 곧바로 하경훈의 다리를 붙잡았다. “경훈 아빠, 안아 줘.” 제3화 마음은 몸이 굳어진 채 고개를 들고 하경훈과 준이를 바라보았다. 하경훈은 준이를 품에 안아 들었다. 하경훈의 눈에는 마음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마음이 자신을 바라보자 준이를 안은 하경훈의 팔이 움찔했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음의 눈에는 서러운 눈물이 맺히자, 하경훈은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서 마음이의 시선을 피했다. “준이야, 또 경훈 아빠한테 안아달라고 하면 어떡해? 얼른 내려와.” 소윤지가 준이를 끌어내리려 했지만, 아이는 하경훈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싫어, 나 경훈 아빠가 안아주는 게 좋아. 경훈 아빠도 날 안아주는 걸 좋아하고.” 준이가 하경훈의 볼에 쪽 소리가 나게 뽀뽀했다. “나 배고파, 케이크 먹고 싶어.” “그래, 케이크 먹으러 가자.” 웃으면서 하경훈의 뒤를 따르던 소윤지가 두어 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 심희연을 불렀다. “희연 씨, 얼른 따라와요.” 심희연이 몸을 낮췄지만, 마음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이가 얼굴을 들고 물었다. “엄마, 저 사람들이 아저씨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그 순간, 심희연은 더 이상 슬픔을 억누를 수 없어서 아이를 품에 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 광경은 너무나 잔인했다. 심희연조차 견디기 힘든데, 고작 5살인 마음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심희연이 대답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엄마, 나 한 번만 더 보고 싶어.” 마음이는 손을 들어 눈물을 닦고, 먼저 심희연의 손을 잡았다. “아저씨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보고 싶어.” “마음아, 우리 집에 가자.” 심희연은 마음은 또 상처받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마음은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나 보고 싶어.” “그래.” 심희연은 아이의 손을 잡고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연회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떠들썩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하경훈과 소윤지, 준이에게 쏠려 있었다. 심희연은 마음을 데리고 구석에 조용히 앉았다. 마음의 시선은 계속 하경훈에게 머물러 있었다. 하경훈이 준이에게 보여주는 다정함과 배려는, 마음속으로는 늘 갈망했지만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이었다. 하경훈이 직접 준이에게 과일을 먹여주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아저씨는 저 사람들을 정말 좋아하나 봐. 엄청 행복하게 웃고 있어. 우리 이제 가자. 아저씨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 마음의 말이 거대한 바위처럼 심희연의 가슴을 내리치면서 숨이 막힐 듯한 고통을 안겼다. “그럼 우리 집에 가자.” 마음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희연은 마음이의 손을 잡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희연 씨, 잠시만요.” 하경훈의 비서가 두 사람 앞을 가로막았다. “하 대표님께서 마음이를 데리고 나가서 놀고 싶다고 하십니다. 아이를 제게 맡겨주세요.” 하경훈의 비서는 회사에서 유일하게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저씨가 나랑 놀러 가자고?” 마음의 흐릿하던 눈빛이 순간 반짝이면서, 시선을 사람들 너머로 돌려 하경훈을 찾았다.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 대표님께서 그렇게 지시하셨습니다.” 그때 하경훈에게서 문자가 왔다. 마음이를 데리고 불꽃놀이를 보러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경훈이 먼저 마음이를 데리고 나가겠다고 말한 것은. 심희연은 불안해서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에 찬 딸의 얼굴을 보자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마음아, 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엄마한테 전화해.” “엄마, 걱정 마.” 마음은 하경훈과 함께하는 것을 무척 기대하며 말했다. “나 말 잘 들을게. 아저씨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 거야.” “그래.” 심희연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슴 한켠이 몹시 쓰라렸다. 아이는 여전히 하경훈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하경훈 쪽을 한 번 바라보며, 마음은 실망하지 않기를 바랐다. 심희연 혼자 자리를 떠났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음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아저씨가 나 두고 갔어.] 마음이 목이 찢어지도록 서럽게 울자, 심희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 무서워. 흑흑...] “마음아! 너 지금 어디야?” 마음이 흐느끼며 말했다. [나... 나도 몰라.]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지금 바로 찾아갈게. 전화 끊지 말고 엄마랑 계속 이야기하자. 엄마 금방 갈게.” 심희연은 휴대폰으로 딸의 스마트워치 위치를 확인하며, 급히 차를 몰아 아이를 찾아 나섰다. 심희연이 딸을 발견했을 때, 아이는 길가에 혼자 앉아 있었다. 온몸에는 눈이 두껍게 쌓인 채 거의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심희연은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오면서, 온몸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듯했다. 심희연은 마음을 품에 꼭 안았다. “마음아.” “무서워하지 마. 엄마 왔어.” “엄마, 나 너무 무섭고, 추워.” 마음은 심희연의 품에 파고들면서 목 놓아 울었다. 마음의 온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저씨, 미안해요.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면 안 됐어요. 저 두고 가지 마세요. 제발 저 두고 가지 마세요...” 심희연의 손이 떨렸고, 가슴이 찢어져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마음이 하경훈을 한 번 ‘아빠’라고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하경훈은 그 어린아이를 길가에 홀로 내버려둔 것이다. 이제 겨우 5살인데! “마음아, 울지 마. 엄마가 계속 네 곁에 있을게. 엄마는 절대 너를 두고 가지 않아.” 제4화 마음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의사는 아이를 이렇게까지 방치한 심희연을 엄마 자격이 없다며 나무랐다. 심희연은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자신을 똑같이 자책하고 있었다. 하경훈이 마음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이를 맡긴 자신이 잘못이었다. “나도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 마음은 하경훈을 찾으며 혼잣말을 했고, 얼굴은 열로 새빨갰다. “엄마, 나도 아빠가 안아줬으면 좋겠어.” “나 착하게 굴게.” 마음이는 계속 울었고,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심희연은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이런 순간에도 아이는 하경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심희연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하경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경훈은 받지 않았다. [딸이 고열이 났어. 병원에 와서 아이 좀 봐줘.] 심희연은 다시 문자를 보냈다. 날이 밝을 때까지 하경훈에게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소윤지는 SNS에 세 식구가 함께 야경을 보는 사진을 올렸다. 딸을 길거리에 버려두고도 하경훈은 조금의 미안함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관심하게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심희연은 완전히 마음을 접었다. 더 이상 하경훈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하경훈의 마음속에서 마음은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고, 심희연은 더더욱 아니었다. 심희연은 밤새 아이를 지켰고, 마음이 마침내 눈을 떴다. “엄마... 미안해. 엄마 걱정하게 했지?” 아이의 어른스러운 말에 심희연은 마음이 더 아팠다. “바보야, 미안할 필요 없어.” 심희연은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정말 미안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었다. 아이에게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엄마, 울지 마. 나 괜찮아.” “응, 엄마 안 울게.” 심희연은 마음을 안고 약을 먹이고 밥을 떠먹였다. 마음이는 병원에 사흘을 입원했고, 퇴원하는 날에야 하경훈에게서 답장이 왔다. [아직 병원이야? 내가 데리러 갈게.] 마음은 휴대폰을 들고 도착한 문자를 보며 기쁘게 웃었다. “엄마, 아저씨가 우리 데리러 온대.” 마음이는 하경훈이 데리러 온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작은 기대를 품었다. 심희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하경훈이 이번만큼은 약속을 지켜주길 바랐다. 설령 마음이를 버려둔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일지라도, 이번 한 번만은 약속을 지켜주길 바랐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마음이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졌다. 아침부터 정오까지 아이는 계속 병실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심희연은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다 다시 딸을 보았다. 심희연의 시선을 느낀 마음이 조용히 말했다. “아저씨 안 오는 거지?” “아저씨가 너무 바빠서 나 데리러 오는 걸 깜빡했나 봐.” “우리 그냥 가자.” 마음이는 스스로를 속이며 애써 웃은 채 침대에서 뛰어내려 심희연의 손을 잡았다. 심희연은 가슴이 먹먹해져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엄마가 집에 데려다줄게.” 심희연은 마음의 손을 잡고 병실을 나서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다가 하경훈을 보았다. “아빠다.” 마음은 다음 순간 곧바로 말을 고쳤다. “아저씨다. 아저씨가 우리 데리러 왔어.”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소윤지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심희연은 놓으려던 마음의 손을 꼭 잡았다. 뒤를 돌아본 하경훈은 심희연과 마음을 보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준이는 괜찮아?” 소윤지가 하경훈을 바라보며 물었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살짝 긁혔어.” 하경훈은 결국 시선을 거두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 심희연은 깨달았다. 하경훈은 두 사람을 데리러 온 게 아니었다. 하경훈의 눈에는 소윤지와 그녀의 아들뿐이었다. 심희연과 마음이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하경훈의 마음에는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을 것이다. 심희연은 지금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심희연은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마음아.” 마음은 심희연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엄마, 우리 집에 가자.” 두 사람은 집에 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마음은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흐느꼈다. 집에 돌아오자 마음이는 곧장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심희연은 아이를 방해하지 않고, 문밖에 조용히 서서 딸을 지켜주었다. 제5화 두 시간 뒤, 마음이 문을 열고 나왔다. 아이의 손에는 곰 인형이 들려 있었고,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이 곰 인형은 하경훈이 마음이에게 준 유일한 선물이었다. 마음은 그 인형을 보물처럼 아껴왔다. “엄마, 나 이거 이제 필요 없어.” 애써 미소를 지은 마음이 곰 인형을 내밀면서 심희연의 손에 쥐여주었다. “아저씨한테 이제 두 번의 기회만 남았어.” “그래.” 심희연은 딸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 생일 파티 열고 싶어. 친한 친구들도 초대하고 싶어. 해도 돼?” 마음이 고개를 들고 바라보자, 심희연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지난해까지 마음의 생일은 항상 집에서 심희연 혼자만 함께했다. 하경훈은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고, 신경을 쓴 적조차 없었다. 심희연은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이것이 마음이 하경훈에게 주는 또 한 번의 기회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마음이 계속 기침을 하자, 심희연은 아이의 몸이 걱정돼 며칠 학교를 쉬게 했다. 주말, 심희연은 마음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갔다. 심희연은 한쪽에 앉아 마음이의 생일 파티 장소를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준이가 마음이 물건을 빼앗으려고 하면서 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준이는 고집이 세고 제멋대로여서 마음이 손에 든 장난감을 꼭 빼앗으려고 했다. 그러다 마음이 장난감을 주지 않자 힘껏 밀쳐서 넘어뜨렸다. 심희연이 급히 다가가 마음이를 안아 일으켰다. “사과해!” 심희연이 준이를 바라보았다. 준이는 고개를 돌리며 거짓말을 했다. “내가 왜 사과해야 해? 쟤가 혼자 넘어진 거야!” “네가 내 딸을 밀쳐 넘어뜨리는 걸 내가 직접 봤어. 네가 사과해야 해.” 준이는 억울한 표정을 짓다가, 뒤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발견하자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아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준이야.” 하경훈이 급히 다가와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하경훈의 다급함과 걱정 어린 눈빛은 마음에게는 단 한 번도 향한 적이 없었다. 심희연은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 준이는 하경훈의 팔을 붙잡고 하소연했다. “경훈 아빠, 쟤네가 나 괴롭혔어. 내 장난감 빼앗고 나 때렸어.” 하경훈은 화가 나서 고개를 돌렸다가, 심희연과 마음이를 알아보고 잠시 멈칫했다. 하경훈의 눈빛은 걱정에서 냉담함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무슨 일이야?” 하경훈이 물었다. “아저씨, 쟤가 저를 밀었어요.” 마음은 간절한 눈빛으로 하경훈을 바라보았다. “저랑 엄마는 쟤 괴롭히지 않았어요. 엄마는 그냥 저한테 사과하라고 한 것뿐이에요.” 하경훈을 본 마음은 울음을 그치고 아빠의 관심을 갈구했다. “그래.” 하경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다쳤어?” “아니요.” 마음은 고개를 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하경훈이 자신을 걱정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하경훈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준이를 데리고 가려고 했다. 마음이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이 심희연을 휘감았다. 하경훈의 편애는 정도가 지나쳤다. 하경훈이 두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계속해서 딸에게 상처를 입히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멈춰.” 심희연이 이를 악물고 두 사람을 막아섰다. “저 아이는 반드시 사과해야 해.” 하경훈은 심희연이 생떼를 부린다고 여겨 표정이 한층 차가워졌다. “일을 크게 만들지 마.” 하경훈이 경고했다. “그냥 어린아이일 뿐이야.” 심희연의 마음은 철렁 내려앉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하 대표, 아이들 일에 크고 작은 게 어디 있어? 밀었으면 사과해야지. 가게에 CCTV가 있으니 필요하면 확인해 봐도 돼.” 심희연이 하경훈 앞에서 처음으로 거절 의사를 분명히 한 순간이었다. 하경훈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얼굴에는 불쾌감이 점점 짙어졌다. 심희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심희연은 반드시 딸을 위해 공정하게 따져야 했다. 하경훈은 마음이를 신경 쓰지 않지만, 심희연은 신경 썼다. 하경훈이 남의 아이 편을 들면서 마음을 괴롭히는 것을 심희연은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 준이가 사과하려고 하지 않자, 하경훈이 차갑게 말했다. “준이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당신...” 심희연의 마음이 얼어붙었다. 하경훈이 소윤지의 아이를 이렇게까지 감싸다니! “괜찮아요, 용서해 줄게요. 엄마, 우리 가자.” 마음이는 심희연의 손을 잡아끌면서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돌아서는 순간 눈물을 떨어뜨렸다. 심희연도 마찬가지로 괴로웠다. 누군가 손으로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심희연이 대답했다. “그래.” 제6화 그날 이후, 하경훈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심희연과 마음은 누구도 먼저 하경훈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마음이 생일이 점점 다가오자, 심희연은 딸과 함께 초대장을 준비해서 유치원에 가져가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마음이는 초대한 친구들이 모두 오겠다고 약속했다며 기뻐했다. 생일 이틀 전, 심희연은 유치원에서 하경훈과 소윤지를 마주쳤다. 준이가 두 사람 사이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었다. 하경훈과 소윤지가 준이를 달래고 있었다. 준이가 잘못을 저질러 하경훈이 보호자 자격으로 학교에 불려 온 것이었다. 심희연은 이 광경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하경훈은 자신의 친딸에게는 한 번도 신경도 쓴 적이 없으면서, 남의 아들에게는 좋은 아빠가 되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게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아이까지 사랑하게 되는 걸까? 심희연은 시선을 돌려 교실에서 나오는 딸을 바라보았다. 마음이는 하경훈 옆을 지나가며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 아줌마.” 하경훈이 알아차리고 마음이를 한 번 쳐다보았다. “희연 씨, 아이 데리러 오셨네요.” 소윤지가 심희연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심희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 부러워요. 따님은 어쩜 그렇게 말을 잘 듣는지. 우리 아들은 맨날 사고만 치잖아요.” 소윤지가 투덜거렸다. “둘 다 아빠 없는 아이인데, 어떻게 이렇게 잘 키우셨어요?” 심희연이 말을 하려는데, 마음이 먼저 입을 열어 하경훈을 바라보았다. “저 아이는 아빠가 있잖아요. 아빠가 잘 가르치면 되잖아요.” 하경훈은 찔리는 게 있어서 마음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얘야, 그런 말 하지 마. 아줌마랑 저분은 그냥 친구 사이야...” 소윤지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마음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듣기 싫다는 듯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 아줌마, 안녕히 가세요.” 마음이는 심희연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 심희연은 하경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참을 걸어가는데도 하경훈은 계속 심희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당신에게 남은 기회는 마지막 한 번뿐이야.’ 그날 밤, 하경훈이 집에 돌아왔다. 마음은 기분이 좋지 않았고, 심희연은 곁에서 계속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두 사람은 동시에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왔어.” 두 사람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하경훈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손에 든 선물 상자를 마음이에게 내밀었다. “저 주는 거예요?” 마음이는 놀라며 물었다. 하경훈에게 선물을 받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응.” “고마워요.” 마음이는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선물 상자를 뜯었다. 상자 안에는 레고로 만든 작은 자동차가 들어 있었다. 심희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소윤지의 SNS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건 하경훈이 준이에게 준 수많은 선물 중 하나였다. 준이가 필요 없다고 해서 버린 물건이었다. “애 교육 좀 똑바로 시켜. 앞으로 쓸데없는 소리 못 하게 하고.” 하경훈이 심희연을 나무랐다. “그리고 별일 없으면 소윤지 앞에 얼씬거리지 마.” 하경훈은 경고하러 돌아온 것이었다. 심희연이 소윤지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할까 봐 걱정한 것이었다. 심희연은 냉소를 지었다. “알겠어.” “또 볼일 있어?” 심희연은 자리를 뜨지 않는 하경훈에게 물었다. 하경훈은 심희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음이 유치원을 옮겨. 가고 싶은 곳 아무 데나 골라. 내가 사람을 시켜서 입학 절차 알아봐 줄게.” 심희연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제 아예 후환을 없애려는 건가. 심희연은 가슴이 아파 딸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이 벌써 자동차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알겠어.” 심희연은 거절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하경훈은 목적을 이루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때 마음이 갑자기 일어나 하경훈에게 달려갔다. “아저씨, 제 생일이 모레인데, 저랑 같이 보내주면 안 돼요? 딱 한 번만요, 이번 한 번만.” 마음은 용기를 내어 말했고,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심희연은 마음이 아파 고개를 돌렸다. 딸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하경훈은 침묵했다. 마음은 계속 고개를 들고 하경훈의 대답을 기다렸다. 제7화 한참 뒤, 하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웃으면서 눈물을 닦은 마음은, 테이블로 달려가 초대장 한 장을 가져와 하경훈에게 건넸다. “주소랑 시간 여기 있어요. 아저씨, 늦으면 안 돼요.” 마음이는 몇 번이고 당부했다. 하경훈은 초대장을 챙기고 몸을 돌려 나갔다. “엄마, 아저씨가 온대.” 마음이 깡충깡충 뛰며 다가왔다. “들었어.” 마음이는 하경훈을 좋아했다. 하경훈이 말 한마디만 해줘도 아이는 한참을 기뻐했다. 잠들기 전, 마음이는 전에 버렸던 곰 인형을 다시 방으로 가져와서 자동차와 나란히 두었다. 심희연은 걱정이 되었다. ‘하경훈이 정말 올까?’ 차라리 단칼에 거절해 주길 바랐다. 마음이에게 생긴 희망을 또다시 꺾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경훈은 초대장을 들고 소윤지를 찾아갔고, 그 초대장을 준이가 보게 되었다. “흑흑...” 준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왜 그래?” 하경훈과 소윤지가 동시에 물었다. 준이는 초대장을 들고 흐느끼며 말했다. “마음이 반 친구들을 다 초대했는데, 나만 안 불렀어.” “울지 마. 마음이 너 안 부른 건 네가 괴롭혔기 때문이겠지. 네가 사과하면 다음에는 불러줄 거야.” 소윤지는 아들을 안고 하경훈을 한 번 바라보았다. “싫어, 나도 친구들이랑 놀 거야. 나도 이날 생일 파티 할 거야. 할 거야, 할 거라고.” 준이는 소윤지의 품에 파고들면서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 “너 그날 생일 아니잖아.” “그럼 생일 파티 아니라고 하면 되잖아. 제발, 나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 “준이야, 말 좀 들어. 울지 마.” 소윤지는 아무리 달래도 준이가 그치지 않자 결국 같이 울기 시작했다. “울지 마, 내가 파티 열어줄게.” 하경훈이 준이를 안아 올리며 말했다. “바로 그날 열자. 반 친구들 전부 초대하고.” “진짜?” 준이는 눈물을 닦으며 흥분한 얼굴로 하경훈을 바라보았다. 하경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준이는 울음을 그치고 웃으며 만세를 불렀다. 심희연과 마음은 하경훈의 결정을 알지 못한 채 함께 생일 파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일 하루 전, 심희연은 마음이를 데리고 유치원 퇴원 절차를 마쳤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마음이는 계속 시계만 바라보았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눈치였다. 생일이 다가올수록 심희연은 불안해졌다. 하경훈이 또 약속을 어기지 않을까 걱정됐다. 당일 아침, 심희연은 하경훈에게 문자를 보냈다. [생일 파티는 5시에 시작해. 늦지 마.] 이번에는 하경훈의 답장이 빨랐다. [그래.] 심희연은 옆에서 태블릿을 하고 있는 마음을 보며 조금 안심했다. ‘만약 하경훈이 정말 온다면, 그래도 떠나야 할까?’ 점심을 먹은 뒤, 심희연은 마음이를 데리고 호텔로 향했고, 아이와 함께 방을 꾸몄다. “엄마, 아저씨가 정말 올까?” 마음도 불안해하면서 가끔 창밖을 기웃거렸다. 심희연은 아침에 받은 문자를 보여주었다. “아마 올 거야.” 마음이는 웃으며 다시 풍선을 가지고 놀았다. 방 꾸미기를 마쳤을 때, 한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에게 갑자기 일이 생겨 오지 못한다는 연락이었다. 심희연은 상대와 몇 마디 통화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예상 밖이었다. 그 뒤로 다른 학부모들에게서도 연달아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 친구들 다 안 온대?” 마음이는 전화 내용을 듣고 얼굴이 어두워졌다. “괜찮아, 아저씨만 오면 돼. 나는 엄마랑 아저씨랑 같이 생일 보내고 싶었어.” 심희연은 너무도 의젓한 딸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입을 열었다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심희연은 다시 하경훈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이번에는 답이 없었다. 생일 파티 시간이 지나도록, 여전히 아무도 오지 않았다. 심희연이 휴대폰을 확인하니, 소윤지가 SNS에 새 글을 올린 것이 보였다. 준이를 위해 입학 축하 파티를 열고, 반 친구들을 전부 초대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진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단체 사진이었고, 하경훈이 맨 가운데 서 있었다. [우리 아들을 위해 파티까지 열어준 경훈 아빠, 우리 아들이 정말 행복해해요. 고마워요.] 심희연의 손이 떨리면서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경훈은 오늘이 마음이 생일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마음이 다가와 휴대폰을 주워 들더니, 멍하니 사진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엄마, 우리 밥 먹자.” 마음이는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케이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엄마, 촛불 켜줘.” 심희연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오면서 숨이 막혔다. 심희연이 촛불에 불을 붙인 뒤 방 안의 불을 껐다. “아저씨가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는 엄마랑 영원히 같이 있고 싶어요.” 마음이의 소원을 듣자 심희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이 쏟아졌다. 촛불이 꺼지자, 심희연은 얼른 눈물을 닦고 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서 먹자.” “엄마, 앞으로는 엄마랑만 생일 보내고 싶어. 밥 먹고 우리 떠나자.” 마음이는 케이크를 한입 먹고는 마침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심희연은 아이를 품에 안았다. “마음아, 울지 마. 엄마가 앞으로 정말 잘 챙겨줄게.” 하경훈에게 주어진 기회는 끝났다. 심희연과 마음이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날 밤, 심희연과 마음이는 짐을 챙겨 집을 떠났다. 두 사람은 A국으로 가는 가장 이른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심희연은 하경훈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하경훈, 남은 인생 행복하길.] 휴대폰을 끄고, 심희연은 마음이 손을 잡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그 인간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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