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은 황후 자리, 뒤늦게 미쳐버린 황제

GoodNovel 완결

후궁을 맡아 다스린 지 3년째 되던 해, 황제의 소꿉친구이자 아버지를 따라 변방으로 유배를 떠났던 류여진이 돌아왔다. 그녀는 문무백관이 보는 앞에서 금란전(金鑾殿)에 들이닥쳐 풀로 만든 반지 하나를 소인혁에게 건넸다. “이건 제가 초원에서 엮은 것입니다. 폐하, 그때 하셨던 약조를 아직 기억하십니까?” 용상에 꼿꼿이 앉아 있던 소인혁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고, 눈에는 그녀를 향한 애틋한 미련이 가득했다. 류여진은 오만하게 내 앞으로 걸어와 내 봉황 무늬 비녀를 뽑아 자신의 머리에 꽂았다. “이 황후 자리는 원래 제 것이었습니다. 이제 주인이 돌아왔으니, 언니는 떠나셔도 됩니다.” 3년 전 소인혁은 류씨 가문을 위해 선처를 구하고자 태묘 앞에서 사흘 밤낮을 무릎 꿇고 빌었다. 나 역시 궁금했다. 지금의 냉정한 황제 소인혁이 과연 류여진의 요구대로 나를 황후의 자리에서 폐위할 것인지.

챕터 (1)

第1章

후궁을 맡아 다스린 지 3년째 되던 해, 황제의 소꿉친구이자 아버지를 따라 변방으로 유배를 떠났던 류여진이 돌아왔다. 그녀는 문무백관이 보는 앞에서 금란전(金鑾殿)에 들이닥쳐 풀로 만든 반지 하나를 소인혁에게 건넸다. “이건 제가 초원에서 엮은 것입니다. 폐하, 그때 하셨던 약조를 아직 기억하십니까?” 용상에 꼿꼿이 앉아 있던 소인혁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고, 눈에는 그녀를 향한 애틋한 미련이 가득했다. 류여진은 오만하게 내 앞으로 걸어와 내 봉황 무늬 비녀를 뽑아 자신의 머리에 꽂았다. “이 황후 자리는 원래 제 것이었습니다. 이제 주인이 돌아왔으니, 언니는 떠나셔도 됩니다.” 3년 전 소인혁은 류씨 가문을 위해 선처를 구하고자 태묘 앞에서 사흘 밤낮을 무릎 꿇고 빌었다. 나 역시 궁금했다. 지금의 냉정한 황제 소인혁이 과연 류여진의 요구대로 나를 황후의 자리에서 폐위할 것인지. 제1화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은 채, 아무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류여진은 새하얀 옷을 입고, 손에는 삐뚤빼뚤하게 엮은 풀반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오라버니, 어릴 적 오라버니께서 말씀하셨잖습니까. 제가 이걸 약조의 증표로 가지고 있으면, 제가 무엇을 원하든 다 들어주겠다고요.” 그녀는 애교 섞인 어조로 말했다. “이제 제가 돌아왔으니 약조를 지켜주십시오.” 나는 비녀가 뽑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소인혁을 바라보았다. 평소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던 소인혁은 지금 용상 손잡이를 꽉 쥔 손등에 핏대가 불거져 있었다. 그는 떨고 있었다. 소인혁은 한 걸음씩 아래로 내려와, 그 볼품없는 풀반지를 소중하게 받아 들고 왼손 엄지에 끼웠다. “기억하고 있다.” 그의 낮고 무거운 한마디에 내 마음은 싸늘하게 식었다. 류여진은 울음을 그치고 활짝 웃더니, 의기양양하게 소인혁의 어깨너머로 나를 바라보았고, 눈빛에는 도발과 경멸이 가득했다. 그 눈빛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보십시오, 언니께서 3년 동안 지킨들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지경이었고, 그 통증 덕분에 나는 마지막 남은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3년 전, 소인혁이 황위를 두고 가장 치열하게 다투던 그날 밤, 내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심씨 가문의 군대를 이끌고 목숨을 걸고 길을 뚫어 그를 궁으로 호위했다. 그날 밤 반란군이 쏜 독화살이 그의 등을 향해 날아왔고, 내가 몸을 던져 대신 화살을 맞았다. 독이 골수까지 스며들어 뼈를 깎아 독을 제거하는 치료를 받는 고통에 사흘 밤낮을 의식 없이 누워 있었고, 지금도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어깨가 쑤셔 붓을 쥔 손이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 류여진은 아버지가 군량과 군비를 횡령해 변방으로 유배되는 마차 안에 숨어 있었다. 소인혁이 비밀리에 호위무사를 파견해 류여진을 지키게 하고, 그녀가 다칠까 봐 전전긍긍한 탓에 그녀는 험한 꼴 한번 겪지 않았다고 들었다. “폐하.”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류 낭자는 법도에 따라 대리시(大理寺)에서 죄인의 가족인지 신분을 확인한 뒤 따로 처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만하거라!” 소인혁이 홱 돌아보았고, 다정했던 그의 눈빛은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류여진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그의 품에 기대며 말했다. “오라버니, 괜찮습니다. 변방의 혹독한 추위도 견뎌냈는데, 고작 대리시가 뭐가 무섭겠습니까?” 소인혁은 안쓰러운 듯 그녀의 두 손을 끌어당겨 살피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내게 명을 내렸다. “황후, 후궁은 나랏일에 관여하지 말거라.” “봉란궁(鳳鸞宮)은 볕이 잘 들고 난방도 가장 잘 되니, 봉란궁을 비워 여진이에게 내어주도록 하거라.” 대전 안에서 순간 여기저기서 놀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봉란궁은 황후가 머무는 처소인데 이름도 지위도 없는 죄인의 딸에게 내주라니?’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봉란궁은 선대부터 정해진 법도에 따라 황후가 아니면 머물 수 없는 곳입니다.” “폐하께서 이러시면 황실의 위엄과 신첩의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법도라고?” 소인혁이 비웃으며 오만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짐이 곧 법도다! 이 나라는 짐이 직접 세운 것이니, 네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니다.” 류여진이 때마침 소인혁의 품에 기대며 가냘프게 기침을 했다. “오라버니, 저 때문에 언니와 다투지 마십시오.” “저는 추위 따위 두렵지 않으니 장작 창고라도 내어주시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저 오라버니 곁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다면…” 소인혁은 그 말을 듣고 더욱 가슴 아파하며, 나를 혐오감이 가득한 눈길로 쏘아보았다. “여진이는 변방에서 3년 동안 모래바람을 맞으며 고생했다. 이는 짐이 빚진 것이다.” “한마디라도 더 거역한다면, 황명을 어긴 죄로 다스릴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지난 3년 동안 흘린 피와 눈물이 그저 웃음거리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제2화 나는 인적이 드물고 음침한 청우헌(聽雨軒)으로 처소를 옮겼다. 이곳은 냉궁 바로 옆이라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낡을 대로 낡았고, 창호지는 절반이나 찢어져 매서운 바람이 쌩쌩 불어 들어왔다. 측근 시녀 설아가 눈물을 훔치며 짐을 정리했다. “마마, 폐하께서 어찌 마마께 이러실 수 있습니까?” “마마께서는 심 대장군님의 따님이시자, 폐하와 함께 나라를 세운 조강지처이시잖습니까!” 나는 딱딱한 나무 침상에 앉아 창밖의 잿빛 하늘을 바라보았고,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설아야, 그만하거라.” 그날 밤, 소인혁은 나를 달래러 오지 않았고, 심지어 전갈 한마디조차 보내지 않았다. 그는 봉란궁에 머물렀다. 듣자 하니 류여진이 봉란궁에서 쓰던 배나무 향이 너무 진하다며, 냄새를 맡으니 어지럽다고 했다고 한다. 그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던 향이자, 소인혁이 직접 나를 위해 조합해 준 향이기도 했다. 그는 이 향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 내가 옛 상처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게 해 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소인혁은 사람을 시켜 그날 밤 내내 내무부 창고에 있던 귀한 향료를 모조리 내다 버리고, 오직 류여진이 좋아하는 꽃 향만 피우게 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류여진이 한밤중에 별을 보고 싶다며 어리광을 부리면서 지붕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소인혁은 정말로 사람을 시켜 봉란궁 지붕 한쪽을 뜯어내 버렸다. 그곳은 대대로 황후가 머물던 곳으로, 벽돌 하나, 기와 한 장에도 대주(大周)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그런 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직 류여진의 웃음 한 번을 얻기 위해서였다. 다음 날 아침, 후궁들이 내게 문안을 올리러 청우헌으로 찾아왔다. 봉란궁에서 쫓겨났다 한들 나는 여전히 황후였고, 이는 대대로 내려온 법도였다. 그러나 류여진은 해가 중천에 뜰 때가 되어서야 뒤늦게 나타났다.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수군거리던 후궁들이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류여진은 붉은색 궁중 예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옷감은 오직 황후만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급 비단으로, 아홉 꼬리 봉황이 수놓아져 있었고 높이 올린 머리에는 금박으로 장식된 옥비녀가 꽂혀 있었다. 나는 순간 흠칫했다. 그것은 지난달 서역에서 막 바친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었다. 나도 한 번 더 바라볼 만큼 정교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소인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었다. “이것은 지나치게 화려하여 황후의 단아한 기품에 어울리지 않는다. 짐이 이미 사람을 시켜 창고에 넣어두었다.” 알고 보니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던 게 아니라, 진작부터 류여진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언니, 어젯밤 폐하께서 이야기를 나누시자며 늦게까지 붙잡아 두셔서, 아침에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언니, 설마 저를 탓하시는 건 아니시지요?” 류여진은 간드러지게 웃으며 일부러 옷깃을 젖혀 목덜미의 붉은 흔적을 드러냈다. 그녀는 절도 올리지 않은 채 대전 한가운데에 버젓이 서 있었다. 주변의 후궁들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어떤 이는 비웃음을 감추려 고개를 숙였고, 어떤 이는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옆에 놓인 찻잔을 들어 가볍게 차 위에 뜬 거품을 걷어냈다. “류 낭자.” 내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는 아직 지위도 없고 황실에서 내린 작위도 없는데, 본궁을 보고 어찌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이냐?” 제3화 대전 안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류여진의 얼굴에 있던 미소가 굳어졌다. 내가 이런 상황에서도 감히 황후로서의 위엄을 내세울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류여진은 순식간에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폐하께서 이런 궁중 예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초원에 있을 때는…” “이곳은 대주의 황궁이지 초원이 아니다.” 나는 찻잔을 탁자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여봐라! 류 낭자에게 예법을 가르쳐 주거라!” 두 명의 늙은 몸종이 즉시 다가와 류여진의 어깨를 짓누르려 했다. 그때 문밖에서 우렁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멈추거라!” 소인혁이 눈부신 황금빛 용포 자락을 휘날리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는데, 온몸에서 서슬 퍼런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늙은 몸종들을 거칠게 밀쳐 내고 휘청거리는 류여진을 부축하더니, 실망과 혐오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심소희, 어쩌다 이리도 매정해진 것이냐? 여진이는 그저 순진하고 꾸밈이 없어서 궁중의 복잡한 속사정을 모를 뿐인데, 기어코 여진이를 죽여야만 속이 시원하겠느냐?” 류여진을 감싸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은 차갑게 식어내렸다. 그가 예전에 부패한 관리의 일가를 몰살하며 관료들을 바로잡으려 했을 때, 밤새 잠도 이루지 못한 채 그의 곁을 지키며 그를 대신해 온갖 욕을 먹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때는 나더러 큰 뜻을 안다며 치켜세우더니, 이제는 궁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 매정한 짓이 되었단 말인가? 소인혁은 류여진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그 자리에서 명을 내렸다. 나를 한 달 동안 청우헌에 근신시키고, 황후의 인장인 봉인마저 거두어 류여진에게 임시로 맡겨 관리하게 했다. 아무런 지위도 없는 여인이 황후의 인장을 맡다니, 이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없을 터였다. 조정의 어사들이 올린 탄핵 상소가 끊임없이 올라왔지만, 소인혁은 모두 무시했다. 그는 조정에서 심씨 가문이 거느린 군대의 공이 너무 커 황제를 위협할 정도라고 질책하며, 어사들이 내 아버지의 사주를 받아 황제를 핍박하려는 것이라고 은근히 몰아갔다. 아버지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고, 병권 일부를 내놓았다. 나는 설아가 울먹이며 전하는 바깥소식을 들으며, 손에 쥐고 있던 원앙 무늬 자수를 가위로 갈기갈기 잘라버렸다. 그 한 달 동안 후궁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렸다. 류여진은 궁중의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 태비들이 불경을 읽는 소리가 시끄럽다며 그들에게 주는 땔감과 소박한 채식마저 줄여버렸다. 성대한 꽃구경 연회를 열겠다며, 원래 강둑을 보수하는 데 쓰려고 마련해 둔 돈까지 멋대로 가져다 썼다. 궁녀와 내시들은 화가 나도 감히 말하지 못했고, 후궁 전체가 온통 어수선하고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차갑게 지켜보기만 했다. 근신이 풀리던 날은 마침 추석을 맞아 가족 연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소인혁은 황제와 황후의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나의 근신을 풀어주고, 저녁 연회에 참석하게 했다. 연회에서 류여진은 소인혁의 오른쪽에 앉았는데, 그 자리는 나 다음으로 높은 자리였다. 그녀는 오늘은 한결 차분하게 연분홍빛 궁중 예복을 입어 유난히 가녀려 보였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류여진이 제비집 죽 한 그릇을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언니, 며칠 동안 제가 궁중의 일을 대신 맡아보니 언니가 평소에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이건 폐하께서 특별히 사람을 보내 영남에서 가져오게 하신 최상급 제비집인데, 저도 아까워서 못 먹고 언니께서 몸보신하시라고 일부러 남겨뒀습니다.” 그녀는 아무런 악의도 없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서늘한 기색이 감돌았다. 나는 그 죽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나는 장군 집안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군의관을 따라다니며 약초를 구별하는 법을 배웠다. 계화청의 짙은 향으로 냄새를 덮었으나, 나는 희미하게 풍기는 쓴 살구씨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게다가 피부에 붉은 발진을 일으키고 심하면 호흡 곤란까지 일으키는 옻나무 가루도 섞여 있었다. 류여진은 나를 사람들 앞에서 망신시키는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빼앗으려는 것이었다. “류 낭자, 마음은 고맙구나.” 나는 받지 않고 덤덤히 말했다. “허나 본궁은 요즘 속이 좋지 않아 몸에 좋은 음식도 많이 먹지 못한다.” “언니, 저를 용서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류여진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죽 그릇을 든 채 무릎을 꿇으려 했다. “언니께서 마시지 않으신다면, 아직도 저를 원망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녀는 말하며 무릎을 꿇는 척 몸을 갑자기 앞으로 기울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기울이는 찰나, 나는 소매 속에 감춰둔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고, 은침 하나가 빠르게 날아가 그녀의 손목 마비혈을 찔렀다. “아악!” 그 순간 류여진의 손이 움찔하더니, 뜨거운 제비집 죽이 담긴 그릇이 그녀도, 나도 아닌, 마침 그녀를 부축하려 다가오던 소인혁에게 그대로 쏟아지고 말았다! 제4화 뜨거운 죽이 소인혁의 용포 자락과 신발 위로 쏟아졌다. “무례하구나!” 소인혁은 뜨거운 죽에 데어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류여진은 순간 놀라 얼어붙었지만, 손목이 저릿한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빨리 정신을 차리더니 나를 손가락질하며 비명을 질렀다. “언니! 어찌 이리도 모질 수 있으십니까? 저는 그저 죽을 올리려 했을 뿐인데, 왜 저를 밀쳐 폐하께 부딪히게 하신 겁니까? 설마 폐하를 시해하려 하신 겁니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소인혁이 고개를 들어 나를 쏘아보았고, 그의 눈에 서린 분노는 당장이라도 나를 집어삼킬 듯했다. “심소희!” 소인혁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손을 휘둘러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짝!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가며 틀어 올린 머리가 흐트러졌고,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돌았다. 귀가 윙윙 울리는 가운데, 나는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 쥔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소인혁을 바라보았다. 3년 전, 그는 내 얼굴을 감싸며 이렇게 말했었다. “소희야, 앞으로는 절대 네가 억울한 일을 겪지 않게 하마.” 그러나 지금, 나를 이토록 억울하게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그였다. 류여진은 소인혁의 뒤에 숨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승리의 미소를 지으면서도, 겉으로는 거짓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오라버니, 언니를 탓하지 마십시오. 제가 중심을 잃은 탓입니다… 언니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소희를 감싸지 말거라!” 소인혁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정말 악독한 계집이구나! 짐이 너를 너무 오냐오냐해서 감히 짐까지 해치려 들 만큼 안하무인이 된 것이냐!” 대전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모두 바닥에 엎드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오직 나만 꼿꼿이 서 있었다. 뺨은 화끈거리도록 아팠지만, 마음은 얼어붙은 듯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폐하께서 신첩이 밀쳤다 단정하신다면, 그런 것으로 하겠습니다.” 나는 뺨을 감싸던 손을 내리고 등을 곧게 폈다. 소인혁은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는지 잠시 당황해했다. “그게 무슨 태도냐?” 소인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내 입가의 피를 보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내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지!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여진이에게 잘못을 빌며, 앞으로 다시는 여진이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면, 짐이 네 황후 자리는 그대로 두고 봉인도 돌려주겠다.” 그는 내게 자비를 베풀고 있었다. 원래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내세워 내 존엄을 짓밟고, 죄인의 딸인 류여진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어 머리에 쓰고 있던 봉관을 천천히 벗었다. 허리에 찬 장신구를 풀고, 황후의 위엄을 상징하는 진홍색 예복을 벗었다. 하얀 속옷 차림으로 대전 한가운데 서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폐하, 저는 이제 이 황후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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